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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노모 모시는 스머프 할배 이야기

아리아케어 2017-04-27 09:14:08 조회수 122
95세 치매 노모 모신 이야기 책으로 펴낸 '스머프할배' 정성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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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아흔다섯의 노모는 이가 없어 이제 거의 음식을 씹어서 드시지 못한다. 정성기 씨는 이런 어머니를 위해 영양가가 높은 일명 '연명죽'을 개발했다. 정씨가 어머니에게 연명죽을 먹여드리고 있다. [김호영 기자]
 
"야, 이놈아! 배고프다 배고파. 너 어미를 굶겨 죽일 생각이냐." 지난밤도 한바탕 전쟁이었다. 새벽 1시 20분 어머니는 자다가 옷에 똥오줌을 한 무더기 쌌다. 어머니를 씻겨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옷과 침대시트까지 빨아 널었더니 이번에는 배고프다고 난리다. 
 
잡곡밥에 계란찜, 데친 적채와 호박볶음, 콜라비 소고기국으로 새벽 밥상을 차려 올리니 한 그릇 말끔히 비우고 나서 소리치신다.
 
"후식은 없냐?" 믹서에 바나나와 사과를 넣고 우유와 아카시아꿀을 부은 생과일주스를 갈아주니 시원하게 원샷 한 뒤 캐러멜 하나 물고 비로소 생긋 웃는다. 아흔다섯 살의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스머프할배' 정성기 씨(66)는 매일 새벽 이 같은 전쟁을 치른다.

2007년 아버지가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이듬해 어머니도 치매에 걸렸고 위암·대장암 증상이 나타났다. 의사는 1년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1년쯤이면' 하는 생각에 난생처음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엄마를 위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벌써 10년째다.

정신줄을 놓치고 본능만 남은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밥 달라고 할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차려드려도 다른 식구가 오면 "저놈이 나를 굶겼다"고 소리를 지른다. 환장할 노릇이다. 잘 먹으니 옷에 변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를 욕실로 안아서 옮기고 씻기는 일도 이제 힘에 부친다. 대소변으로 범벅이 된 옷과 이불을 매번 베이킹소다로 빨고 찜통에 삶아 내는 일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머니가 시도 때도 없이 밥 달라고 소리칠 때마다 '에구, 징글징글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보니 어느새 어머니의 애칭은 '징글맘'이 돼버렸다.

치매 환자에게 흐르는 시간은 정신의 근육을 약화시킨다. '제정신'을 바투 잡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정신줄을 놓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처음 정성기 씨가 어머니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루의 반쯤은 정신이 들어왔었는데 지금은 맑은 정신의 '엄마'가 되는 시간이 하루에 10~20분도 되지 않는다.

"징글맘, 이제 그만 안식의 강을 건너가세요" 하면서도 오늘도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그래도 아직은 짧게라도 진짜 어머니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씨는 징글맘에게 해드린 요리를 매일 블로그에 올린다. 지금까지 올린 요리 레시피만 500가지가 넘는다. 또 징글맘에게 올린 밥상 이야기를 묶어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목련이 활짝 핀 봄날, 정씨가 징글맘을 모시고 사는 경기도 부천 소사구의 아파트를 찾았다. 매일 3시간씩 오는 요양사에게 징글맘을 맡기고 인터뷰에 임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징글맘은 "배고프다" "이놈은 어디 갔느냐"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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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점심은 어떤 음식을 차려주셨나요?

▷징글맘이 요새는 음식을 잘 씹어 드시지 못해요. 그래서 주로 죽 종류를 해드려요. 고기와 야채 등을 믹서로 갈아서 만드는데 재료는 그때그때 달라요. 제가 그걸 어머니의 생명줄을 이어준다는 뜻으로 '연명죽'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반찬도 요즘은 호박볶음이나 계란찜같이 부드러운 것밖에 못 드셔요. 식사 후에는 꼭 우유와 아카시아꿀을 넣은 생과일주스를 마시고 캐러멜로 마무리합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어머님을 혼자 모시고 사실 생각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치매를 앓다가 요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폭력성 치매였기 때문에 집에서 돌볼 수 없었어요. 아버지 임종도 지키지 못한 것이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는데 어머니도 치매에 걸리신 거예요. 어머니 혼자 두는 것이 너무 위험했어요.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깜빡 잊어버려서 불이 날 뻔한 적도 있었고, 길을 잃어버려 헤매다 파출소에서 연락 온 적도 많았고요. 위암·대장암 증세를 보여 어머니가 부천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당시 의사가 6개월~1년 정도밖에 못 사실 것 같다고 했어요. 군대 생활도 3년 했는데 까짓것 1년 정도 못할까 싶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혼자 이 아파트로 들어왔어요.

―10년이나 모시고 사실 거라고 생각하셨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은가요?

▷당연하지요.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 발을 담그지도 않았겠지요.

―다른 형제들과 교대로 모실 수도 있을 텐데요?

▷저희가 5남매예요. 제가 첫째고 아래로 남동생 3명에 여동생 1명이 있지요. 징글맘이 저랑 둘째밖에 믿지를 않아요. 그런데 둘째는 당시 고위공직에 있어서 모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정씨는 동생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여동생은 암 수술을 받아서 모실 형편이 아니고요. 가끔 나 쉬라고 동생들이 교대로 몇 시간씩 돌봐주긴 하는데 엄마는 맨날 "저놈들은 밥도 못 차리니 아비 네가 차려라"하면서 쫓아버리려고 해요. 동생들도 "형, 나는 정말 하루도 못 보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어머님과 더 애틋했나요?

▷아뇨.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제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고향 사람한테 사기를 당해서 집안이 쫄딱 망했어요. 어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미제 물건을 파는 행상을 시작했지요. 중3 때 집안 사정을 알고 있던 선생님이 입주 가정교사 자리를 소개해주셨어요. 중3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년간 다른 사람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를 했으니 어머니랑 정 붙일 시간이 더 없었고, 어머니가 해주신 밥도 거의 못 먹었지요. 어쩌면 뒤늦게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것이 하늘이 주신 기회 같아요. 어머니와 못 나누었던 정 쌓으라고.

―그런데 왜 어머님이 선생님만 찾는 걸까요?

▷저한테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보여주셨잖아요. 아무리 어머니와 자식 사이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자식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으신 것 같아요. 어머니도 여자잖아요. 그래도 동생들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 모시는 것을 돕고 있어요. 둘째는 제가 어머니 모시는 비용의 70%를 대주고 있고, 셋째 동생은 저 위로한다고 안줏거리 들고 찾아와 술친구가 돼주고, 다른 동생들도 자주 찾아와 힘을 주고 있습니다.

―요양원 같은 시설에 맡길 생각은 안 해봤나요?

▷왜 안 해봤겠어요. 7년차로 접어들 때 스트레스가 커지고 우울증까지 와서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징글맘을 어디 요양원에라도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서 장기요양등급(3등급)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들어갈 요양원까지 알아봤죠. 그런데 막상 요양원에 맡길 생각을 하니 측은한 생각이 들었어요. 또 "사시면 앞으로 얼마나 사시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온 거죠.

―정신이 드시는 시간과 정신을 놓아버리는 시간이 규칙적인가요? 아니면 느닷없이 정신이 들었나 나갔다 하시는가요?

▷일정하지 않아요. 점점 정신이 드시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 같아요. 요즘 멀쩡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하루에 길어야 20분 정도입니다. 제일 심한 시간은 밤 11시에서 새벽 6시 사이입니다. 괴성을 지르고 욕을 하고, 그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집니다.

―정신이 드셨을 때 어머니는 어떤가요?

▷영락없는 엄마죠.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 하세요. "아비야, 고맙다. 맛있는 거 만들어줘" "어이구, 내가 빨리 가야 네가 이 고생에서 벗어날 텐데" 이런 말씀을 하시죠. 젊을 때 어머니는 엄청 밝고 욕도 잘하고 쾌할한 분이었어요. 지금도 정신이 들어오면 칭찬도 잘하고 농담도 잘해요. 제가 개발한 고등어 스테이크를 만들어줬더니 "아비야, 정말 너는 요리 박사야, 이 스테이크는 정말 처음 먹는 맛이야. 어느 년들도 이런 거 만들어주지 않았어. 정말 네가 최고야" 이러더라고요. 또 "너는 어미 덕에 서양요리, 청요리, 일본요리까지 배웠으니 굶어죽지는 않겠다. 그러니 어미에게 고맙다고 해라"고 능청을 떨기도 하고 "아비야, 앞으로 백 살까지만 더 살게"라고 하기도 해요. 그런 엄마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이 생활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어머니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요.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잠을 제대로 못 잔다는 거죠. 밤 11시에서 새벽 6시까지 징글맘의 증상이 제일 심해져요. 징글맘의 괴성을 무시하고 귀 막고 자려고 해도 이웃집 사람까지 잠 못 자게 할까봐 그러지도 못해요. 10년 동안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제대로 잠을 자본 적이 없어요. 한 시간 간격으로 깨서 변이 묻은 옷 벗기고 씻겨드리고 빨래하고 밥 차리고. 인간에게 가장 고약한 고문이 잠을 안 재우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 말을 정말로 실감해요. 3년 전에 너무나 힘이 들어 어머니와 함께 번개탄을 피우고 동반자살할 생각도 했고 한강으로 투신할 생각도 했어요. 요새는 수면제를 보는 것도 두려워요. 저의 소원이 6시간 동안 깨지 않고 자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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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배고프다, 이놈아" 소리에 정성기 씨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정씨가 어머니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세요?

▷작년부터 매일 오후에 3시간씩 요양보호사가 집을 방문해서 징글맘을 맡아줘요. 그럴 때마다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가지요. 주로 아라뱃길과 한강자전거도로를 달려요. 자전거로 스트레스도 날리고 체력도 유지하죠.

―어머님을 모신다고 하니까 가족은 반대하지 않았나요?

▷길어야 1년 정도라니 다들 처음에는 별 걱정 안 했어요. 그 기간이 길어지니 다른 방법을 찾자고 하다가 이렇게 오래 모시니 이제는 제 아내랑 아이들도 모두 "존경스럽다"고 해요. 아내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게장 같은 것을 만들어 나르는 등 가족 모두 잘 도와줍니다. 예전에 제 아내가 휴대폰에 저를 '좁쌀영감'이나 '밴댕이'라고 저장했는데 지금은 '캡틴'으로 바꿨어요.

―원래 요리를 잘 했나요?

▷전혀요. 제 손으로 라면도 안 끓여 먹던 사람입니다. 어머니 드시게 하다보니 솜씨가 늘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음식을 잘 드세요?

▷젊었을 때부터 일본식 소고기덮밥인 규동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규동을 자주 해드렸고, 제가 개발한 고등어 스테이크도 좋아해요. 징글맘 고향이 함경북도 경성인데 명태회무침이라는 함경도 음식도 좋아해요. 명태회무침은 꽤 난도가 높은 음식이라 이제야 딱 엄마가 좋아하시는 맛으로 요리할 정도가 됐어요. 그런데 이제는 씹을 수가 없어 정작 못 드시게 되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제가 만들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는 계속 늘어가는데 어머니가 드실 수 있는 음식은 계속 줄어들어요.

―병원에서 1년밖에 못 살 거라고 했던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신 것은 선생님의 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를 처음 모실 때 변이 새까만 색이었는데 제가 해드린 음식을 드시고 색깔이 돌아왔어요. 좋은 것만 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어머니는 매일 날계란 노른자를 드시고 또 계란찜을 좋아하시는데 계란을 깼을 때 노른자가 깨져 있으면 그건 제가 먹어요. 어머니에게는 신선한 것만 올리죠. 어머님이 드시고 싶다는 것은 늘 만들어드려요. 몸이 찾는 음식이 보약이죠. 옛 어르신들이 '약식동원(藥食同源)' '약보불여식보(藥補不如食補)'라고 약과 음식은 그 근원이 같고, 최고의 보약은 음식이라고 했잖아요.


―요리 블로그는 어떻게 시작한 거죠?

▷처음에는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없어서 다른 요리 블로거들이 올린 음식을 보고 만든 다음에 그것을 기록해둘 필요가 있어서 올리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쌓이다 보니 응원해주는 분도 많아졌고, 징글맘에 매여 움직일 수 없는 몸이다보니 이 블로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이 됐습니다.

―블로그 팬이 많지요?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는 분도 계시고, 또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데 제가 올리는 음식 레시피가 도움이 된다는 분도 계세요.

선물을 보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징글맘이 캐러멜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캐러멜을 한 박스 보내주시는 분도 있고, 집 앞에 찾아와 문앞에 죽 같은 먹을거리를 두고 가시는 분들도 있어요. 며칠 전에는 부산에 계신 분이 자전거 탈 때 쓰라고 자전거용 고글을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고마운 분들이죠.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일단 푹 자고 싶어요. 12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북한강 자전거도로 따라서 자전거 타고 춘천까지 달리고 싶어요. 이틀 정도 시간이 주어지면 손주들이랑 동해안으로 여행을 가서 경포대에서 일출을 보고 싶어요. 그러면 힘이 나서 징글맘과 또 당분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님께서 이제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으면 좋겠나요, 아니면 더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나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어요. 새벽에 잠 못 자고 괴롭힐 때는 "엄마, 이제 그만 강을 건너세요" 하다가도 제가 만든 음식 맛있게 먹고 웃으실 때, 정신이 들어 "미안하다" "고맙다" 하실 때는 이런 작은 기쁨들이 오래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하늘에 달린 것이죠. 다른 생각 안 하고 어머니가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하는 날까지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래야 후회가 안 남을 것 같아요.

정성기 씨의 책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징글맘께 드리는 편지'가 있다. 이것이 정씨의 진짜 속마음일 듯하다.

"엄마,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아들이 맛있는 요리 만들어 드릴 테니, 많이 드시고 추운 겨울도 잘 견디고 엄마가 내게 말씀하신 대로 99세의 그 어느 봄날에 예쁘게 가세요. 연애 시절에 아버지께 불러주신 '영춘화가 야들야들 핀 봄날'에 그리운 아버지 만나러 가세요."

 
정성기 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흔다섯의 노모와 10년째 씨름하고 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고 잡지사와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광고회사 임원으로 있다가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1년밖에 못 살 것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1년만 모시자'는 마음으로 요리를 해드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올린 음식의 레시피를 '스머프할배의 만화방'이라는 블로그에 올리는 파워 요리 블로거다. 2008년부터 경북 영주의 노인요양원 이당원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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